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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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0 주일오전예배 설교(시편 131편 1-3절/젖땐 아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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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8-20 16:05 조회2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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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QjKEn2nvqN0


겸손을 위한 기도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을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죄가 교만인 것을 알고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일평생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 생활 잘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던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교만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든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교만하게만 만들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교만해집니다. 그것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교만해지지 않도록 평생 힘쓰고 조심해야 합니다.

 

1. 다윗이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함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첫째,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다윗이 첫째로 기도한 것은 마음이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교만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최초로 죄가 시작될 때도 마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 죄의 형태가 마음의 교만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사야 14:13-14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여기 나오는 5가지 내용은 한마디로 높아지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같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루시퍼의 마음속에 이렇게 교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쫓겨나 사탄이 되고,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교만을 이렇게 부릅니다. 디모데전서 3: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교만을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정죄를 받은 것이 바로 교만죄입니다. 그래서 마귀처럼 정죄 받지 않도록 새로 입교한 사람은 감독으로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이처럼 큰 죄이고 무서운 죄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8:14), 자기를 신이라 하면서 하나님 자리에 앉게 되고(28:2), 하나님의 대적이 됩니다(벧전 5:5). 이렇게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는 물과 같아서 항상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교만해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누구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만해지면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만 나옵니다.

마태복음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애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성도는 예수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만 배우면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되고 우리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큰 새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독수리나 타조가 노래하는 것 들어 보셨습니까? 작은 새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종달새의 노랫소리나 카나리아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옵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순종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보다 내 생각이 더 나아 보이고, 하나님 말씀보다 내 계획이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교만을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합니다. 잠언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가 골리앗을 이긴 것이 아니라 골리앗을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마음에서 시작된 교만이 눈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눈이 높아지면 아주 오만해집니다. 안하무인의 사람이 됩니다. 거만한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내가 낮아져야 다른 사람이 존귀하게 보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가능합니다. 내 눈이 겸손해야 하나님을 우러러 경배할 수 있습니다. 눈이 높은 사람은 만족을 모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감사가 없습니다. 항상 원망 불평 분노 짜증 시기 질투합니다.

잠언 6:16-17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교만한 눈입니다. 잠언 21:4에 보면 눈이 높은 것이 죄고, 마음이 교만한 것이 죄고, 그런 악인이 형통한 것도 죄입니다. 이사야 65:5에 보면 다른 사람을 향해서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은 코에 연기처럼 괴로워하고 종일 타는 불처럼 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눈이 오만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죄인을 보실 때 어떻게 보실까요? 창조주이신 주님, 죄가 하나도 없는 거룩하신 주님의 눈에 인간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얼마나 더럽고, 얼마나 죄가 많고, 얼마나 허물이 많고, 연약하고 무능하고 거짓되고 악하고 고집불통이고, 얼마나 추한 죄인으로 보였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 어떤 사람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여기서는 큰일즉 행위에 있어서 교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옛날 왕은 절대자였습니다. 못할 일이 없는 자입니다. 누가 왕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고,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왕이면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 큰일과 놀라운 일에 대해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고 큰마음을 가져야 하고 큰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큰일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한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내 소명이 아닌 일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어도, 하면 안 됩니다.

다윗은 젊을 때부터 겸손했습니다. 형들은 다 집에서 사무엘 선지자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데 다윗은 혼자서 양을 쳤습니다. 하나님은 그 다윗을 불러다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 왕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즉위하기는커녕 오랜 기간 사울 왕의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어 쫓겨 다니며 고난을 당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왕이라고 나서지 않았고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겸손히 때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하루는 다윗이 굴속에 숨었는데 사울이 그 굴로 들어와서 발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는 일이다하면서 사울을 죽이지 않고 왕의 겉옷 자락만 조금 뱁니다.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조금 밴 것을 가지고도 괴로워합니다. 다윗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유다 지파에서 왕이 됩니다. 7년 반 동안 한 지파의 왕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립니다. 다윗은 북이스라엘을 침략하지 않았고, 자기 손으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이고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할 일에만 충실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합니다. 분수를 넘어서는 일을 하려고 덤빕니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려고 합니다. 큰일 해서 자기 이름을 내고 욕망을 채우려고 합니다.

사울 왕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드립니다(삼상 13:8).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멜렉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사울 왕은 이번에도 불순종합니다. 아말렉 왕을 죽이지 않고 살진 짐승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가서 책망했으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울의 인생은 끝났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사울을 쓰시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교만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자기가 교만하다고 생각하며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회개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2.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기도함

2절에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여기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얼마나 귀합니까? 여러분의 심령이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이렇게 됩니다. 은혜가 임하면 이렇게 됩니다. 겸손한 사람의 영혼에는 고요함과 평온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안합니다.

이사야 57:20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악인의 마음에는 평온함이 없습니다. 악한 사람은 마음이 분주하고 복잡하고 불안합니다. 번민과 갈등과 분노와 짜증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의 영혼은 젖뗀 아이 같습니다(2).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으면 얼마나 평안하겠습니까? 무슨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까? 젖뗀 아이는 울며 보채지 않습니다. 어머니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도 하나님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3절이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은 자신이 누리는 평안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일은 일시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속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겸손한 성도들은 주신 은혜에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는 사람,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바라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가도를 통해 교만을 물리쳤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고요한 마음 평온한 심령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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