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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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7 주일오전예배 설교(호세아 6장 1-11절 / 힘써 여호와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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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9-17 17:08 조회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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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l3CaqUag-2Q?si=2QSt-3Qdl2j09FUN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외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할 리가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지금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거야, 나는 지금은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잘할 거야’ 이러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다. 지금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고 찢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범죄하면 나라를 찢으시고, 성전을 찢으시고, 가정을 찢으시고, 사업을 찢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고치고 싸매어 주셨습니다. 나라도 회복시키고, 성전도 회복시키고, 백성들도 회복시킵니다. 낫게 하시고 싸매 주실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욥기 5:18-19에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2절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이틀 후” “셋째 날”은 잠시 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사람을 잠시 후 살려내고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택한 백성을 일으키고 살리실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께 돌아가면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예수님 믿어야 살 수 있습니다. 아모스 5: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2.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외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집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역대상 28:9에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면서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스라엘의 특권이며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깊이 알아가는 만큼 영이 자라고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아는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2:3-4에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하나님을 모르면 죽습니다. 영적인 죽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힘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범죄하고, 하나님을 몰라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몰라서 죽어갑니다.

“힘써”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일에 관심이 없고 자기 욕심 채우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 자기가 원하는 것 얻기 위해서는 온갖 지혜를 짜내서 기어코 얻고 맙니다. 남 괴롭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온갖 머리를 짜냅니다. 그런데 선한 일에는 힘을 안 씁니다. 안 믿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는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해줘도 듣지 않습니다. 성도 중에도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하는 일, 성경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는 힘을 안 씁니다. 그냥 교회만 다닙니다. 모든 관심이 돈에 있고, 쾌락에 있고, 자기 유익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려고 힘씁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려고 힘씁니다. 바울은 예수님 만난 후, 주를 알고, 주를 얻고, 주를 닮아가려고 온 힘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기 위해서 나타나시는 모습을 설명한 것인데, 새벽빛같이는 태양이 솟아날 때를 의미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일정함같이 하나님의 나오심도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대해주십니다. 사람이 범죄 하면 밤을 만나게 되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새벽이 옵니다. 

4절에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입니다. 유다는 남쪽 유다의 대표 지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과 유다를 회개 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이슬같이 쉬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변덕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다가 너무나 쉽게 떠납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시작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 말씀은 제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한 것입니다. “인애”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13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긍휼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없이 형식적으로 제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중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부지런히 제사를 드렸지만 죄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죄인을 사랑하는 마음도, 죄인을 구원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죄가 없는 의롭고 거룩한 자로 착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한 사람은 세리이고 한 사람은 바리새인입니다. 세리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리를 더 의롭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시편 51:17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상한 심령은 깨어지고 부서진 마음을 의미합니다. 구약 제사 가운데 소제가 있습니다.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곡식을 찧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실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렇게 부서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죄를 붙들고 애통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7절에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아담에게 주신 언약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았으나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자기를 위하는 마음으로 돌이키면 그것이 타락입니다. 무엇이나 자기를 위해 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죄요 죄의 근원입니다. 모든 죄가 자기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8-9절에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길르앗”과 “세겜”은 도피성이 있는 곳입니다. 도피성은 부지중 살인한 자가 도피하여 보호받는 곳입니다. 제사장이 그 도피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면 그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이렇게 성스러운 도피성이 악을 행하는 고을이 되었습니다.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고을이 되고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했습니다. 도피성은 오늘날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가 악을 행하는 곳이 되어 서로 물고 찢고 싸우면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일입니다. 교회는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사람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10-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에브라임이 음행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 나라를 의지하고 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을 징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남 유다에 대해서는, 북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고도 같은 죄를 범하므로 유다도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은 용서하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낫게 하시고 싸매 주시고 살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십니다.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겨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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