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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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7 수요저녁예배 설교 (히브리서 7:11-28 /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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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9-27 21:31 조회216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PkfPuL68Tw8?si=8VXlc2yHed9cRFkK


히브리서 7장 11-28절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 예수 


본문 가운데 중요한 요절은 19절이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죄인들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께 가까이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야 살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은혜받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제사 뿐이었다. 짐승을 잡아 제사드리고 피를 뿌려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러나 이 제사는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고, 제사장만 제사를 주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제사로는 죄인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 지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 만약에 아론의 자손들이 드리는 짐승 제사로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이 되어서 제사 드리는 방법으로는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 10:1)

제사 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짐승 제사로는 죄인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10:4)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짐승의 피로는 죄인들의 죄를 온전하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장차 실체되시는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림자가 무슨 능력을 행할 수 있겠는가? 그림 속에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 음식을 보는 것으로는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짐승 제사로는 사람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죄를 다 사하고 없애는 일은 율법이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이것이 율법이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년에 한번 건강검진을 하라고 한다. 초음파도하고 엑스레이도 찍고 MRI검사도 한다. 그런 검사의 기능은 병을 찾아내는 것이다. 암이나 혹을 찾아내기만 하지 치료하지는 못한다. 치료는 따로 의사를 만나서 수술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해야 한다. 율법은 검사하는 기계와 같다. 찾아만 낸다. 율법으로 스캔해보니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죄를 없애지는 못한다. 죄를 완전히 없애고 깨끗하게 하고 의롭게 만들어야 온전해 지겠는데 그것은 하지 못한다. 이 일은 예수님이 하신다. 예수님만 죄를 씻을 수 있고, 죄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고 의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따라서 율법으로는 온전하게 할 수 없다. 계속 구약 제사만 드리는 방법으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치료 받지 못하면 깨끗하게 되지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제사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 말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오셔서 속죄를 이뤄주시면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 


12절

제사 직분이 율법에서 나왔다. 제사 직분과 율법을 같은 것이다. 구약 제사로는 온전케 할 수 없으니 예수님의 속죄로만 죄를 사할 수 있다. 제사 직분이 바뀌게 되니까 율법도 바뀌어야 한다. 

구약 율법은 불완전하다. 신약에 와서 새 언약을 주시고 새 복음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구원 받도록 인도해주신다. 


13-15절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서 새로운 제사장을 세운다고 했는데, 한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은 다른 지파 사람이 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 속하신 분이시다. 요셉의 아들로 오셔서 유다 지파에 속하셨다. 레위 지파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시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유다 지파에서는 제사장이 될 수 없는데, 예수님은 유다 지파로서 제사장이 되셨으니 율법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새로운 방법으로 제사장을 세우신 것이다.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다.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님도 그와 같이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서 일어나셨다. 율법, 레위 지파와 상관 없은 특별한 제사장이시다. 


16절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다. 구약 율법, 레위 지파와 상관 없이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셨다. 하나님의 새로운 방법, 은혜로 제사장이 되셨다.

"불멸의 생명의 능력"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은 영원히 멸할 수 없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죄인들을 의롭게 만들고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다.

이 세상의 법을 보면 세상법이 있고 그 법 위에 도덕법이 있다. 그 위에 율법이 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신령한 영적인 법이 있다. 최상위법을 따라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니 전혀 하자가 없고 문제될 것이 없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의 능력의 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셨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택한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생명을 주셔서 죄인들을 온전하게 하시고 구원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제사장이 사명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에게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이 있으신데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 


17절

예수님은 구약 율법의 제사장이 아니고,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고,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특별한 제사장이 되셨다. 


18절

"전에 있던 계명" 구약 율법이다.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한다고 했다. 율법 안에는 많은 제도와 의식과 규례들이 있다. 의문과 제도에 쌓여서 생명의 역사가 강하게 드러나지 못한다. 예수님을 예표하는 희미하게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가 죄로 인해서 약해졌기 때문에 그 율법을 다 지킬 수도 없다. 그래서 전에 있던 계명은 무익하고 연약하므로 폐한다고 했다. 율법 전체를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에 속한 것을 폐하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콩을 거두어서 도리깨로 두드리면 껍데기가 까지고 알맹이만 남는다. 콩을 자루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온다. 그것이 온전케 하는 것이다. 껍데기는 제거하고 알맹이만 거두는 것처럼 율법의 껍데기, 의식, 제도, 의문은 제거하고 그 속에 있는 율법이 내포하는 정신, 신령한 뜻은 밝히 드러내서 온전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해서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깨닫게 만들고 주님을 잘 믿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율법의 껍데기 부분을 폐했기 때문에 구약의 제사와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것도 구약시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신은 지금도 지키면서 따라가는 것이다. 구약시대 지키던 토요일 안식을 폐지하고 지금은 주일을 지킨다. 


19절

율법을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더 좋은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의 몸으로 속죄제사를 드려주시고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씻어주셔서 우리를 정결하게 만들어주시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구약 율법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더 잘되고 복된 길이 열린 것이다. 


20-21절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다. 제도와 율법에 의해서 제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맹세로 제사장이 되었다. 하나님이 맹세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제사장과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신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 110:4)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맹세하셨다.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번 맹세하신 것에 대해서 뉘우치지 않으시고 바꾸지 않으시고 영원히 그 맹세를 지키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변하지 않는다. 새로 제사장을 세울 필요도 없다. 


22절

"더 좋은 언약" 구약과 비교해서 구약보다 신약이 더 좋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이다. 구약은 연약하고 신약은 강하다. 특별히 예수님이 보증이 되셨다.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속죄와 구원에 대해서 보증이 되어 주셨다. 얼마나 확실한가! 죄사함이 확실하고 구원이 확실하고 영생이 확실하다. 예수님이 직접 구원하시고 보증까지 해주셨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믿어도 된다.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 받은 것을 믿어도 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어도 된다. 죄사함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염려할 필요 없다.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23-24절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수가 굉장히 많다.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에 죽는다. 제사장 역할을 좀 하다가 나이 들면 죽는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제사장이 된다. 그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제사장을 세웠다. 그래서 제사장의 수요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원히 계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그곳에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고 성도들의 구원역사를 위해 힘쓰고 애쓰고 계신다. 지금도 계속 대제사장으로서 일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새로운 대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다. 


25절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죄를 사하는 능력, 구원하는 능력, 천국 가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지금도 제사장 역할을 계속하시고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시기 때문에 제사장 직분은 바뀌지 않고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온전케 할 수 없었다. 짐승 제사로 죄를 완전히 사하거나 의롭게 할 수 없었다. 구약시대 제사장은 맹세로 된 제사장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를 완전히 사하실 수 있고,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지셨다. 예수님은 잠시 뒤에 바뀌는 제사장이 아니고 영원히 제사장이시다. 절대 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 


26절

예수님과 같은 제사장이 합당하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좋은 제사장이시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으시다. 반대로 구약 제사장은 거룩하지 못하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다. 더러움이 가득하다. 세상에 속해서 세속화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나고 우월한 제사장이시다. 


27절

구약 제사장들은 자기가 죄인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 죄를 대속해야 했다. 자기 죄를 속죄하고 그 다음에 백성들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날마다 제사 드리는 일을 반복해서 해야했다. 그것이 확실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 그래서 더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2)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 (히 9:28)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것이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8)

그래서 지금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지금도 제사를 드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히브리서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천주교는 이 말씀을 믿지 않아서 지금도 제사를 드리고 있다. 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고 제사이다. 미사 때 하는 영성체는 제사와 같다. 떡이 예수님의 몸으로 변하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로 변한다고 말한다. 미사는 제사이다. 예배가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피흘려 주신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예수님이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고 온전케 하셨기 때문에 더이상 제사는 필요없다. 


28절

율법과 하나님의 맹세를 비교한다. 구약 레위지파 제사장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을 비교하면서 세가지로 설명한다.

레위 지파 제사장은 율법을 근거로 해서 제사장이 되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었다.

레위 지파 제사장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죄인들이 제사장이 되어서 일시적으로 임무하다가 죽으면 끝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셔서 제사장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도 죄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없는 완전하신 분으로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구약 율법, 구약 제사 방법으로는 온전하게 할 수 없는데 예수님이 온전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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